1 9 0 2 0 5 + 더 잘 살기 위해 더 많이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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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잘 살기 위해 더 많이 읽고 씁니다
사는 건 그냥 살 수 있는데 잘 사는 건 어렵다. 뭐가 잘 사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2018 . 11 . 23

얼마 전 미국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대학 졸업 연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제목은 ‘이것은 물이다’. 

그는 한 대학의 졸업식장에 초청되어 이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이제 사회로 내던져질 졸업생들에게 당부한다.

축제의 시간은 짧고, 인생은 길다. 

이제부터 여러분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이 사회를, 이 삶을,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타인들을,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는 건 그냥 살 수 있는데 잘 사는 건 어렵다. 

뭐가 잘 사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그 안에서 중심을 잡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급하게 의견을 쏟아내고 강하게 주장을 펼친다. 

누구를 믿고 누구를 믿지 않아야 할지 결정하기도 어렵다. 


나보다 나은 사람 때문에 배가 아프고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피해의식을 느낀다. 

그 와중에 내 뒤에 있는 사람, 나로 인해 뒤처진 사람의 손을 잡아주기란 쉽지 않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저 ‘사는 기계’가 되어버린다. 

이런 나를 과연 나는, 좋아할 수 있을까?

나는 원래 책을 별로 안 읽었다. 

책을 싫어한다거나, 책에 관심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한 달에 한두 권 읽으면 많이 읽는 수준이었다. 


그때 내가 책을 잘 안 읽었던 이유는 세상은 몸으로 부딪치는 곳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책을 잡고 있을 시간에 밖으로 나가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행동하고 싶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세상을 다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도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엄청나게 많이 생각했지만, 그것은 자기 성찰이라기보다는 자아비판이나 자기방어에 가까웠다.

책을 많이 읽게 된 것은 30대가 되면서부터였다. 

갑자기 내가 너무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무언가를 좀 더 알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누군가에게 상담이라도 받고 싶었는데, 상담은 부담스러우니 책이라도 읽어야 했다. 

그렇게 30대의 10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책을 손에 잡고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들이 고구마 줄기라도 캐듯 줄줄이 딸려 나왔다.

책은 직접적인 문장으로 내게 무언가를 일러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나 스스로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내야 했다. 

나는 책 속의 인물들에 나를 이입했고, 그러다 보면 ‘나라고 해도 별수 없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내 안에 어떤 것들이, 어떤 아름답고 추하고 사악하고 선한 것들이 숨어 있는지를 깨달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말한 대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는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전보다 1mm라도 나은 사람이 되는 쪽으로 움직였다면 그것은 모두 책 덕분이다.

얼마 전에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을 봤다. 

패터슨시에 사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의 하루하루는 버스 바퀴처럼 굴러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다른 꿈을 꾸는 아내가 어젯밤에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패터슨은 버스 회사까지 걸어가 하루 종일 같은 노선을 빙빙 돌며 버스를 운전하고 승객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혼자 앉아 도시락을 먹는다.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와 아내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매일 달라지는 그녀의 꿈(여기에서의 꿈은 미래의 계획)을 듣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가는 길에 단골 바에 들러 맥주를 한 잔 마신다. 

이렇게 똑같은 생활 틈틈이 그는 시를 쓴다.

이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도 아름다운 것들과 놀라운 것들과 새로운 것들을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패터슨이 시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읽고 쓰는 사람에게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눈, 시인 김소연의 표현대로라면 ‘겹눈’이 생긴다. 

좀 더 과장하자면 그로 인해 그의 삶은 고결해진다. 

그가 고결한 삶을 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내면이 고결하기 때문이다.

읽고 쓰는 것. 

그게 뭐 밥 먹여주느냐, 

작가가 될 것도 아니고. 


그런 냉소적인 말에는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읽고 쓰는 일을 통해 평범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삶도 의미를 얻는다. 


우리의 인생에는 성취의 순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살아갈수록 원하는 것을 영영 손에 넣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거나, 가진 것들마저 하나씩 잃어갈 것이다.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 우리가 이룬 것들, 그리고 끝내는 우리 자신까지도.

그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기어이 끝까지 이 삶을 살아나가야 하는 의미를,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의미를 찾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노력해 왔다.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 그 의미를 마음에 품은 사람은 어떤 것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비록 너무 똑똑했던 사람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스스로 생을 끝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렇게 믿는다.



[871호 – think]
Writer 한수희 kazmikgirl@naver.com
책 『온전히 나답게』,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