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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 0 8 1 9 + 현재진행형이 아니라고 해서 좋아했던 마음까지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1 9 0 8 1 9 + 현재진행형이 아니라고 해서 좋아했던 마음까지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유월에 좋아하는 친구 두 명이 회사를 떠났다. 2년간 함께 일했던 ㅎ은 오랜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했고, 6개월간 내 앞자리에서 반짝이던 ㅇ는 계약이 만료되어 학교로 돌아갔다. 예정된 이별이었지만, 나는 사람에 큰 의미를 두는 인간이므로 당분간 빈자리를 볼 때마다 적적해할 계획이다. 때마침 장마도 시작됐으니 바야흐로 센티멘털해지기 좋은 계절이다.

 

상황과 계절 핑계를 앞세웠지만, 실은 매 순간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일정량 이상 껴안고 지낸다. 본격적으로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때는 아마도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넘어가던 겨울이 아니었나 싶다. 수능 끝난 수험생이었던 우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학교 운동장에 있는 동산을 산책 삼아 오르내리며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주로 미지의 영역인 대학 생활에 대한 상상이었다. “대학 가면 진짜 친구 사귀기가 어렵대. 거의 다 겉 친구래.” “고등학교 때 사귄 친구가 오래간다더라” 같은 소리를 하며 이상한 의리를 쌓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막상 고등학교를 벗어나 만난 관계에서 생긴 말썽은 예상과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운 좋게도 내가 속한 집단마다 성별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친구가 되는 자유로운 문화가 있었다. 덕분에 나는 놀랄 만큼 쉽고 깊게 새 친구들을 좋아하게 됐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면, 관계의 지속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거. 급하게 가까워진 친구는 여름날의 반찬처럼 쉽게 상했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 이십 대 초반에는 일상의 중심이 자주 바뀌는 법이니까. 일정표를 채운 단어가 ‘동아리’에서 ‘아르바이트’로 바뀌었다는 이유로, 서로를 소울 메이트라고 불렀던 친구와 별일 없이 멀어졌을 때. 봉사 활동을 하며 한 달 동안 동고동락했던 이들이 하나둘 인사도 없이 메신저 단체방을 나갔을 때. 나는 놀이터에 홀로 남은 아이처럼 처량한 기분을 맛봐야 했다. 그때 손에 꼭 쥐고 있었던 주인 없는 마음은 미처 식지 못해 아직 따뜻한 상태였는데….

 

비슷한 일을 몇 번 겪고는 매사에 계산적으로 굴고 싶어졌다. 스쳐 지나가는 관계에 연연하는 촌스러운 애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상처받지 않을 것인가’하고 머리를 굴리는 일이 늘었다. 언젠가는 모두에게 마음의 문을 닫은 채로 지내기도 했다. 누군가 좋아진다 싶으면 혼자 지레 겁을 먹고 뾰족한 말로 선을 그었다. 그렇게 애를 써도 역시나 마음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좋아하는 사람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수학 문제 푸는 것처럼 매번 어려웠다. 어쩌다 한 번 정답을 맞춘 뒤에도 비슷한 유형의 다른 문제에서는 또 헤매야 했다.

 

그 방황을 끝내준 사람은 뜻밖에도 스물셋 겨울 함께 토익 공부를 하던 언니 오빠들이었다. 보통 토익 스터디에서 만난 이들과는 지극히 사무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마련인데, 그때 만난 사람들과는 예외적으로 합이 좋았다. 수업 전후 짧은 대화를 나눌 때마다 다정한 기운이 깃들어서, 머리로는 ‘어차피 곧 다시 못 볼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그들을 좋아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던 날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회식은 육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날 나는 언제라도 다시 만날 것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어쩐지 야속해서 내내 꽁해 있었다. 그리고 비뚤어진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어차피 오늘 지나면 만나지도 않을 거잖아요.”

 

흥이 깨질 것을 각오하고 뱉은 말이었으나, 과연 좋은 사람이었던 언니 오빠들은 어른스럽게 나를 달랬다. “꼭 자주 봐야만 인연인가? 길 가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사이가 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인연이지!”그건 찰나의 대화였지만 이제껏 관계가 변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상처받았던 느린 마음을 위로하기에 충분한 온기였다. 아, 현재진행형이 아니라고 해서 좋아했던 마음까지 깎아내릴 필요는 없는 것이구나. 그동안 오늘 손에 쥔 관계까지만 유효하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가난했던 거구나.

 

예상했던 대로 우리의 관계는 그날로 끝났다. 대신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의 술자리는 기억 속에 잠겨 있다가, 내가 관계에 회의감을 느낄 때면 슬그머니 떠오른다. 그리고 다정했던 언니 오빠들처럼 내가 너무 인색해지지 않게 다독여준다. ‘지속되지 않아도 설령 끝이 나쁘더라도 한때 좋았던 관계를 깎아내리진 말자.’

 

다시 유월에 했던 두 사람과의 이별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우리는 분명 매일 사무실에서 얼굴을 부딪칠 때보다는 멀어질 것이다. 곧 무언가 일상의 가운데를 차지할 테고 지나간 이는 자리를 내주어야겠지. 그래도 우리가 주고받은 다정한 쪽지나 사진 같은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괜찮다. 마음을 쏟길 잘했다.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주는 주문

현재진행형이 아니라고 해서 좋아했던 마음까지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https://univ20.com/88661

대학내일 857호 - small mind 발췌


1 9 0 7 0 6 + 평일도 인생이니까

1 9 0 7 0 6 + 평일도 인생이니까

평일도 인생이니까

그동안 숱한 평일들을 인생에서 지우며 살아오고 있었던 건 아닐까.


2019 . 04 . 10


#황금 같은 주말에 최악의 선택을 하다니


3월의 어느 주말, 수목원에 다녀왔다. 친구가 1년 전에 선물로 준 수목원 입장권이 3월 31일로 만료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네받을 때만 해도 언제 가면 좋을까, 봄꽃을 보러 갈까, 단풍을 보러 갈까 기분 좋은 고민을 했지만 그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까먹고서 한 고민이었다. 모든 공짜 티켓은 기한 만료 직전이나 기한이 지나고 나서야 그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다. 그 전엔 부러 눈에 띄게 하려고 지갑에 넣어두거나 책상 앞 코르크 보드에 꽂아놔도 투명 티켓처럼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이번엔 모처럼 때를 놓치지 않을 참이었다. 도로는 주말답게 붐볐다. 집을 나선 지 2시간이 지났건만, 거북이 운전으로 반도 못 온 상황이었다. 꽃도 안 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은 대체 뭘 보러 집을 나선 걸까. 애꿎은 나들이객 탓을 하며 보조석에 앉아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렇게 막힐 줄 알았으면 그냥 하루 연차 쓰고 평일에 갈걸. 아니 그냥 집에서 쉴걸. 공짜 티켓이 뭐라고. 집에 있었으면 지금쯤 몸도 마음도 아주 편했을 텐데.


오랜만에 놀러 나선 길이 꽉 막히니 사소한 모든 것이 후회스럽고, 눈앞에 보이는 웬만한 것은 다 원망스러웠다. 막히는 차들 사이사이를 누비며 뻥튀기를 흔드는 손길도, 앞차에서 흘러나오는 쩌렁쩌렁한 노랫소리도, 찌뿌듯하게 흐려지는 게 곧 비를 쏟을 것 같은 하늘도. 망했다. 다 망했어. 나는 되는 게 없어.



#어딘가로 가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


이럴 땐 후회를 입 밖으로 내뱉어 옆에 있는 사람도 함께 후회하게 만드는 게 내 특기다. “괜히 나왔다, 그치.” “다 나 때문이야, 내가 진작 가자고만 했었어도….” “그냥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3시간 걸리는 것보다 지금 돌아가는 게 나을 수도 있어!”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의 2시간을 길바닥에 버리고 있는 내 자아는 작아지고 작아져서 ‘다시방’에라도 욱여넣을 수 있는 크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던 K가 말했다.


“그냥 ‘가는 길’인 거야. 차가 막혀도 안 막혀도 우린 지금 수목원에 가고 있는 중이잖아. 그 시간을 그냥 좀 즐겨도 돼.” K는 가끔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한다. 수시로 기우뚱거리는 나를 대신해 시소 위에서 그때그때 앞으로 두 칸, 뒤로 한 칸씩 옮기며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말을. 듣고 나면 늘 이 상황이 별거 아닌 것처럼 여기게 하는 말을.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서울을 출발해 막히는 도로 위에서 보낸 시간이 3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K의 말을 곱씹는 동안 생각했다. 이 3시간을 ‘버렸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고. 지금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도 나의 주말, 나의 토요일이었다. 엄연히 내 인생의 3시간이고. 그런데 나는 왜 자꾸 이런 시간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걸까? 언제부턴가 버스 안에서, 기차 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힘들어하게 되었다. 그건 아마 견디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서일 거다. 예전의 나는 여기에서 저기로 가는 시간을 그 나름대로 보낼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마음이 자꾸 비좁아진다. 어쩌면 이미 과정보다 도착이 중요한 어른이 되어버린 건지도 몰랐다.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도 인생이니까


목적지에만 진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인생을 중요한 이벤트가 있는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으로 구분하고, 나머지 날들을 ‘아무것도 아닌’ 시간들이라 치부하지 않는 것. 내게 필요한 건 그것뿐인지도 몰랐다. 생각해보면 삶의 시간이 다 그렇다. 대학에 합격하기 전, 취업하기 전,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나누어 놓고 그전의 시간을 다 ‘진짜가 아닌’ 시간으로 여기면 우리 앞에 촘촘히 놓여 있는 시간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출퇴근하며 입버릇처럼 “빨리 토요일 되면 좋겠다.”라고 하는 순간 평일은 인생에서 지워지는 것처럼. 그건 참 이상한 말이다. 그럴 때 우린 월·화·수·목·금요일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주말에 도착하기 위해 버리는 날들?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싶은 벌칙 같은 시간? 나는 종종 월요일의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다크서클이 드리운 얼굴로 말하곤 했다. “오늘 금요일 아닌가요? 왜 아니죠…?” 그렇게 말할 때마다 멀쩡한 평일들은 순삭되어야 마땅한 날들이 되었다. 버려도 되는 날은 없는데도.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평일도 인생이기 때문에.


행복한 순간 앞에서 우리는 종종 시간이 흐르는 것을 아까워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식으로밖에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 외의 시간들을 하찮게 대할 때, 우리가 버리고 있는 건 시간이 아니라 인생인데도. 그동안 숱한 평일들을 인생에서 지우며 살아오고 있었던 나처럼 말이다.


물론 삶에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도 있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게 결코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는 일이다. 잎을 다 떨군 나무에게 겨울은 버리는 시간일까? 벚나무는 꽃이 지고 난 뒤 사람들이 무슨 나무인지도 몰라주는 나머지 세 계절을 버리며 살까? 그렇지 않다. 나무는 나무의 시간을 살 뿐이다. 벚나무는 한 철만 살아있는 게 아니라는, 인생은 수많은 월화수목금토일로 이루어져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그 주말 나는 꽉 막힌 도로에서 봄의 한나절을 지켜보았는지도 모르겠다.

[885호 – think]

ILLUSTRATOR 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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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회복에 직방이라고 하서 구매한 리프리셀 비타민B랑 캘리포니아골드 리포솜 비타민C !
먹어보고 아우라? 글루타티온도 구매해 볼 생각 ㅎㅎ
대세는 항산화제라고 했다 ㅎㅎ

내일부터는 아침운동도 하고 다시 다이어트 해야지
<챌린저스> 라는 어플로 주 3회 운동기록 남기기 시작했다
2주 챌린지라 기간이 아쉽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고 30일짜리도 새로 만들던지 신청하던지 해서 계속 해야지 :)

일기도 매일매일 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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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 0 2 1 2 + 우리가 도망쳐 온 모든 것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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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독일의 전설에 이런 게 있지요. 독일 바덴 지방의 어느 젊은 백작이 덴마크를 여행하다가 아름다운 성의 정원에서 오라뮨데 백작 부인을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그는 그 성에 머물면서 남편을 잃고 아이들과 살아가던 오라뮨데 백작 부인과 깊은 사랑을 나눕니다.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을 때 그는 "네 개의 눈이 있는 한 당신을 바덴으로 데려갈 수 없다오. 네 개의 눈이 사라지면 반드시 당신을 데리러 오겠소."라는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네 개의 눈이란 자신의 부모를 뜻하는 말이었지요. 


집으로 돌아간 그는 반대할 줄 알았던 부모로부터 수 개월 뒤 의외로 쉽게 허락을 받자 기쁨에 들떠 덴마크로 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오라뮨데 백작 부인이 아이들을 살해한 뒤 죄의식에 몸져 누운 채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백작 부인은 '네 개의 눈'이 새로운 사랑에 방해가 되는 자신의 아이들인 걸로 오해해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 거지요. 자초지종을 알게 된 독일 백작은 말을 타고 필사적으로 도망칩니다.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백작 부인의 그 처참한 사랑으로부터 말입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대학생 츠네오가 다리를 쓰지 못해 집에만 틀어박힌 조제를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판자촌에서 살아가는 장애인 조제와 사랑을 나누다가 서로 다른 처지 때문에 헤어지게 된 츠네오는 조제의 할머니가 죽자 이를 계기로 다시 그녀에게 돌아가 함께 삽니다. 결혼까지 염두에 두고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에게 소개시키기 위해 조제와 자동차를 타고 떠난 츠네오는 도중에 마음을 바꿔 갈 수 없게 됐다고 고향에 전화를 합니다. 전화를 받던 동생은 "형, 지쳤어?"라고 되묻지요. 

그 여행 후 결국 츠네오는 조제와 헤어집니다. 영화 속 이별의 순간은 의외로 너무나 깔끔합니다. 조제는 담담히 떠나보내고, 츠네오는 별다른 위로의 말 없이 그냥 일상적인 출근이라도 하는 듯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섭니다. 집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옛 여자친구는 그를 만나자마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합니다. 묵묵히 들으며 함께 걷던 츠네오는 갑자기 무릎을 꺾고 길가의 가드레일을 잡은 채 통곡합니다. 그 순간 츠네오의 독백이 낮게 깔립니다. "담백한 이별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 댈 수 있지만, 사실은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결국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우리가 도망쳐 떠나온 모든 것에 바치는 영화입니다. 
한때는 삶을 바쳐 지켜내리라 결심했지만, 결국은 허겁지겁 달아날 수 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처참한 결말을 논외로 한 채 사랑 자체의 강렬함만으로따지면, 오라뮨데 백작 부인만큼 온 몸을 던지는 사람도 없겠지요. 정서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조제만큼 절박하게 사랑이 필요한 경우도 드물거고요. 공포 때문일 수도 있고 권태나 이기심 탓 일 수도 있겠지요. 동생이 되물었듯, 츠네오는 그저 지쳤던 것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떠나갑니다. 

모든 이별의 이유는 사실 핑계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긴, 사랑 자체가 홀로 버텨내야 할 생의 고독을 
이기지 못해 도망치는 데서 비롯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게 어디 사랑에만 해당되는 문제일까요. 

도망쳐야 했던 것은 어느 시절 웅대한 포부로 품었던 이상일 수도 있고, 세월이 부과하는 책임일 수도 있으며, 격렬하게 타올랐던 감정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결국 번번히 도주함으로써 
무거운 짐을 벗어냅니다. 그리고 항해는 오래오래 계속됩니다. 

그러니 부디, 우리가 도망쳐 온 모든 것들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길. 

이 아름다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으로 머리를 깨끗하게 묶은 조제의 뒷모습처럼, 결국엔 우리가 두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지 않기를. 



1 9 0 2 0 6 +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1 9 0 2 0 6 +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까지 찾아가 아내 에우뤼디케를 구해내는데 성공한 오르페우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가 주어집니다. 그건 저승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지요. 그러나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속 설명에 따르면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에, 그녀가 포기했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이로 인해 아내를 데려오는 일은 결국 마지막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지요.


구약 성서에서 롯의 아내도 그랬습니다.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심판 받을 때 이를 간신히 피해 떠나가다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 기둥이 되었으니까요. 금기를 깨고 뒤돌아보았다가 돌이나 소금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전세계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탐욕스런 어느 부자의 집이 물로 심판 받을 때 뒤돌아본 그의 며느리가 바위가 되고 마는 충남 연기의 장자못 전설을 비롯해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여러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니까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입니다.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 신들의 나라에서 돼지가 된 부모를 구출해 돌아가던 소녀 치히로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에 놓인 터널을 지나는 동안 결코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는 거지요. 


그런데 왜 허다한 이야기들에 이런 ‘돌아보지 말 것’에 대한 금기가 원형(原型)처럼 반복되는 걸까요. 그건 혹시 삶에서 지난했던 한 단계의 마무리는 결국 그 단계를 되짚어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결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르페우스처럼, 그리움 때문이든 두려움 때문이든, 지나온 단계를 되돌아볼 때 그 단계의 찌꺼기는 도돌이표처럼 지루하게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소금 기둥과 며느리 바위는 그 찌꺼기들이 퇴적해 남긴 과거의 퇴층 같은 게 아닐까요. 


류시화 시인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시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나였다/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고 했지요. 정해종 시인도 ‘엑스트라’에서 “그냥 지나가야 한다/말 걸지 말고/뒤돌아보지 말고/모든 필연을/우연으로 가장해야 한다”고 했구요.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은 치히로가 그 힘든 모험을 마치고 빠져 나오는 통로가 다리가 아닌 터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개의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엔 다리와 터널이 있겠지요. 다리는 텅 빈 공간에 ‘놓는’ 것이라면, 터널은 (이미 흙이나 암반으로) 꽉 차 있는 공간을 ‘뚫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가 ‘더하기의 통로’라면 터널은 ‘빼기의 통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삶의 단계들을 지날 때 중요한 것은 얻어낸 것들을 어떻게 한껏 지고 나가느냐가 아니라, 삭제해야 할 것들을 어떻게 훌훌 털어내느냐,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막 어른이 되기 시작하는 초입을 터널로 지나면서 치히로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몸으로 익히면서 욕망과 집착을 조금 덜어내는 법을 배웠겠지요.


박흥식 감독의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사랑이 잘 풀리지 않을 무렵, 윤주는 봉수를 등지고 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보지 마라. 뒤돌아보면 돌이 된다”고 되뇌지만 결국 뒤를 돌아 보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 쓸쓸히 확인한 것은 봉수의 부재(不在)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정말로 뒤돌아보고 싶다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돌아서서 보세요.

치히로가 마침내 부모와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터널을 통과한 뒤에야 표정 없는 얼굴로 그렇게 뒤돌아본 이후가 아니었던가요.


1 9 0 2 0 5 + 더 잘 살기 위해 더 많이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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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잘 살기 위해 더 많이 읽고 씁니다
사는 건 그냥 살 수 있는데 잘 사는 건 어렵다. 뭐가 잘 사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2018 . 11 . 23

얼마 전 미국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대학 졸업 연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제목은 ‘이것은 물이다’. 

그는 한 대학의 졸업식장에 초청되어 이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이제 사회로 내던져질 졸업생들에게 당부한다.

축제의 시간은 짧고, 인생은 길다. 

이제부터 여러분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이 사회를, 이 삶을,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타인들을,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는 건 그냥 살 수 있는데 잘 사는 건 어렵다. 

뭐가 잘 사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그 안에서 중심을 잡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급하게 의견을 쏟아내고 강하게 주장을 펼친다. 

누구를 믿고 누구를 믿지 않아야 할지 결정하기도 어렵다. 


나보다 나은 사람 때문에 배가 아프고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피해의식을 느낀다. 

그 와중에 내 뒤에 있는 사람, 나로 인해 뒤처진 사람의 손을 잡아주기란 쉽지 않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저 ‘사는 기계’가 되어버린다. 

이런 나를 과연 나는, 좋아할 수 있을까?

나는 원래 책을 별로 안 읽었다. 

책을 싫어한다거나, 책에 관심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한 달에 한두 권 읽으면 많이 읽는 수준이었다. 


그때 내가 책을 잘 안 읽었던 이유는 세상은 몸으로 부딪치는 곳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책을 잡고 있을 시간에 밖으로 나가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행동하고 싶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세상을 다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도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엄청나게 많이 생각했지만, 그것은 자기 성찰이라기보다는 자아비판이나 자기방어에 가까웠다.

책을 많이 읽게 된 것은 30대가 되면서부터였다. 

갑자기 내가 너무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무언가를 좀 더 알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누군가에게 상담이라도 받고 싶었는데, 상담은 부담스러우니 책이라도 읽어야 했다. 

그렇게 30대의 10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책을 손에 잡고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들이 고구마 줄기라도 캐듯 줄줄이 딸려 나왔다.

책은 직접적인 문장으로 내게 무언가를 일러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나 스스로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내야 했다. 

나는 책 속의 인물들에 나를 이입했고, 그러다 보면 ‘나라고 해도 별수 없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내 안에 어떤 것들이, 어떤 아름답고 추하고 사악하고 선한 것들이 숨어 있는지를 깨달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말한 대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는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전보다 1mm라도 나은 사람이 되는 쪽으로 움직였다면 그것은 모두 책 덕분이다.

얼마 전에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을 봤다. 

패터슨시에 사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의 하루하루는 버스 바퀴처럼 굴러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다른 꿈을 꾸는 아내가 어젯밤에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패터슨은 버스 회사까지 걸어가 하루 종일 같은 노선을 빙빙 돌며 버스를 운전하고 승객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혼자 앉아 도시락을 먹는다.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와 아내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매일 달라지는 그녀의 꿈(여기에서의 꿈은 미래의 계획)을 듣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가는 길에 단골 바에 들러 맥주를 한 잔 마신다. 

이렇게 똑같은 생활 틈틈이 그는 시를 쓴다.

이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도 아름다운 것들과 놀라운 것들과 새로운 것들을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패터슨이 시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읽고 쓰는 사람에게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눈, 시인 김소연의 표현대로라면 ‘겹눈’이 생긴다. 

좀 더 과장하자면 그로 인해 그의 삶은 고결해진다. 

그가 고결한 삶을 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내면이 고결하기 때문이다.

읽고 쓰는 것. 

그게 뭐 밥 먹여주느냐, 

작가가 될 것도 아니고. 


그런 냉소적인 말에는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읽고 쓰는 일을 통해 평범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삶도 의미를 얻는다. 


우리의 인생에는 성취의 순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살아갈수록 원하는 것을 영영 손에 넣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거나, 가진 것들마저 하나씩 잃어갈 것이다.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 우리가 이룬 것들, 그리고 끝내는 우리 자신까지도.

그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기어이 끝까지 이 삶을 살아나가야 하는 의미를,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의미를 찾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노력해 왔다.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 그 의미를 마음에 품은 사람은 어떤 것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비록 너무 똑똑했던 사람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스스로 생을 끝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렇게 믿는다.



[871호 – think]
Writer 한수희 kazmikgirl@naver.com
책 『온전히 나답게』,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저자 


1 9 0 2 0 4 + 쇼코의 미소

1 9 0 2 0 4 + 쇼코의 미소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 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그 말이 무서웠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그 말을 언제나 기억한다.


.

.

.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

할머니는 어린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
최은영
한지와 영주, 쇼코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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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참 빠르다

벌써 19년도 2월의 시작이라니


이번 명절은 서울에서 혼자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


읽고싶었던 책도 주문했고


보고싶었던 드라마도 봐야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수하고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과 해야지

'너'가 아니면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과 해야지.


그때까지 나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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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아니란다. 얘야.
그냥 사랑이란다.
사랑은 원래 달고, 쓰라리고,
떨리고, 화끈거리는 봄밤의 꿈 같은 것.

그냥 인정해버려라.
그 사랑이 피었다가 지금 지고 있다고.

그 사람의 눈빛,
그 사람의 목소리,
그 사람의 몸짓,
거기에 걸어두었던 너의 붉고 상기된 얼굴.

이제 문득 그 손을 놓아야 할때..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

봄밤의 꽃잎이 흔날리듯
사랑이 아직도 눈앞에 있는데
니 마음은 길을 잃겠지.

그냥 떨어지는 꽃잎을 맞고 서 있거라.
별 수 없단다.
소나기처럼 꽃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삼일쯤 밥을 삼킬 수도 없겠지.
웃어도 눈물이 베어 나오겠지.
세상의 모든 거리, 세상의 모든 음식,
세상의 모든 단어가 그 사람과 이어지겠지.

하지만 얘야.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야 비로소 풍경이 된단다.
그곳에서 니가 걸어나올 수가 있단다.
시간의 힘을 빌리고 나면 사랑한 날의,
이별한 날의 풍경만 떠오르겠지.

사람은 그립지 않고
그 날의 하늘과 그 날의 공기,
그 날의 꽃향기만 니 가슴에 남을거야.

그러니 사랑한 만큼 남김없이 아파해라.
그게 사랑에 대한 예의란다.
비겁하게 피하지 마라.
사랑했음에 변명을 만들지 마라.
그냥 한 시절이 가고, 너는 또 한 시절을 맞을뿐.
사랑했음에 순수했으니
너는 아름답고 너는 자랑스럽다.

 

 

 

 

<딸에게 미리쓰는 실연에 대처하는 방식> 서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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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걸린 후두염 때문에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그냥 요양만 하고 온 통영여행

21살땐가 동기들이랑 당일치기로 다녀오고 나서

요번에 두번째로 다녀온 것이더라

 

 

 

도착해서 횟감을 사기위해 들른 중앙시장 앞 광장.

노을이 이뻐서 햄찌랑 한 컷 찍어보았다 :)

 

요번에는 달아공원에서 노을을 못봐서 너무 아쉬웠다 ㅠ

겨울이 되니 해가 너무 짧아졌어 ..!

 

 

회는 도미랑 방어+우럭 이렇게 3만원치 했는데 둘이서 먹기에는 너무 많았다 ㅋㅋ...

다음에는 그냥 .. 제철 생선으로 2만원치만 사는걸로 합의를 보았지

 

 

이날 너무 너무 아쉬웠던게
엄청 맛있는 사케를 큰돈들여 준비해갔는데 한잔 먹자마자 열이 다시 확 올라서 ㅋㅋㅋ...... 저녁 7시부터 내리 쿨쿨 잠만 잤다는 함정이 ....
ㅠㅠ ... 여행은 건강할때 가야한다.... 흑...

 

 

 

아침에 일어나서 본 뷰가 너무나 이뻤다 :)

숙소 잘 정한듯! (통영 타셋! 다음에도 참고하쟈)

 

굴 넣은 된장찌개와 비빔면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버스시간까지 한참 남아서 동피랑마을 구경을 하기로 ...

 

 

 

 

 


그사이 동피랑은 상업카페들이 너무 많이생겨서 아쉬운 마음이 컸다.
그래서 예전에 갔던 젤 위에 있는 카페로 갔음

 

의자 배치가 조금 바꼈으나 예전 그대로라 반가워서 사진 또 찍고 ㅋㅋ 

오랜만에 달고나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다 집에왔다

 

결론.. 여행은 안아플때 가야 즐겁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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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석에서 찍은 거가대교.

 

장마가 겹쳐서 비가 폭우같이 오는 바람에 어디 놀러가진 못했지만

 

펜션에서 고기 구워먹고 나름 알차게 놀다 온듯.

 

그리고 부산에 있는 시민냉면집은 밀면이 맛난걸로 ..!

 

(햄찌는 냉면을 추천해주었으나 냉면과 밀면의 구분이 없어서.. 냉면을 먹어부러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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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선동.

조용하지만 아기자기한 작은 동네.

 

 

 

 

유명한 장미터널.

개화시기가 지나서 시들한 장미 밖에 없었지만, 만개할 때 오면 참 예쁘겠다

 

 

 

 

 

 

 

 

 

 

 

 

 

 

마지막은 햄찌와 찍혔네 :)

 

요새 힙하다고 하더니 여기저기 많이 리모델링 하는 집이 많더라.

여기도 곧 상가들 들어서면.. 주민들이 많이 불편하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조용히 살던 주민들은 방문한 사람들이 찍는 카메라 소리가 소음으로 들린다는 이야기.

그들의 스트레스에 작은 공감을 하면서 조용히 걷다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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